‘대리사회’ 유감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1-08-26   

지난주에 나는 사회복지법인의 이사회에 참석했다.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와중에 이사이신 스님은 연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산안만 가지고 한참의 시간을 끌었던 이사회는 예정된 안건의 절반도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날짜를 잡았다. 기초적인 예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는 이사의 적격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스님이 진짜 내용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간을 지연해야 하는 누군가의 뜻이 있었고 그에 충실했을 것이다. 이사는 ‘법인’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법인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에 충실한 것이 진짜 문제다.


이런 문제는 규모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는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갔을 때 나는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분리선출 감사위원 후보자에게 회사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이사회 의장이 부처님은 아닐 텐데 감사위원 후보자의 ‘견해’를 대신 답변하고 감사위원 후보자는 그 상황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가 없는 감사위원이 어떻게 대표이사를 감독하고 회사를 감사할 수 있을까. 반도체 위기론이 대두되는 동안에도 이사회의 역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만을 외치던 이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불과 10일 만에 정할 수 있는 일을 반년 동안 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왜 고액의 보수를 받아야 하는지, 존재 자체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아마 법인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또 어떠한가. 국민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인지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장병들을 데려오기 위해 수송기를 보낸 것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인데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서는 개별 부처의 판단이라고 한다. 정부의 개혁의지를 보여준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취업제한 조항 강화를 강조해놓고, 지금은 무보수·미등기·비상근이라는 궤변으로 스스로 강화한 조항을 형해화한 것이 부끄럽기는 한가 보다. 빛나는 일은 상급자에게, 논란이 되는 일은 자신의 판단으로. 이것이 재벌의 가신들만 하는 행위인 줄 알았는데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비판이 공허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도 기업도 사회도 비슷한 이 모습은 대리사회인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의 비판은 대리인에게만 닿을 뿐, 본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해도 상담원들의 마음만 다칠 뿐, 회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위험은 경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우리가 화를 내는 대상은 외주, 하청. 본질이 아닌 외피다. 이들은 결국 대리인에 불과하고 본질은 늘 숨어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일까.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대리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사람만 찾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꾸 무엇인가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는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26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