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워크아웃, 폐지가 정답인가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6-21   

요즘 산업은행은 동네북이다. 국책은행 주도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오히려 부실을 키우고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키는 돈 먹는 하마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감사보고서 내용이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지만, 그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래서 산업은행 무용론 내지 폐지론이 들끓었다. 또한 관치의 통로가 되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워크아웃 제도) 폐지론도 힘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폐지하는 게 능사인가?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체계의 개편, 그리고 워크아웃을 포함한 구조조정 절차의 개선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와 시도가 있었다. 물론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따라서 산업은행과 워크아웃을 폐지하자는 선명한 주장은 막힌 속을 뚫어주는 청량제임에 틀림없지만, 그 대체물은 무엇이며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2008년 미국의 상황을 돌이켜보자.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가 부실해지자 미국 중앙은행이 구제금융을 제공해서 살렸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가 부실해지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법정관리로 보냈다. 그 결과는? 세계경제가 붕괴되었다.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제금융과 법정관리 중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이 사례를 든 것은, 위기관리 문제에서 선험적 정답은 없으며, 현실 조건에 기반을 둬 차선의 길을 찾는 것이 보다 안전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럼 산업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간접자본과 기간산업 건설을 지원하던 산업은행의 기능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따라서 중소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금융체계를 재편하는 것이 필연이지만, 개발금융 기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통일경제 내지 북방 경제협력의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산업은행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은 분리·존속시키되, 기업투자금융(CIB) 기능은 민영화하기로 했던 것도 그런 구상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인해 산업은행 재편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아가 대형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업무를 떠맡으면서 산업은행은 도저히 팔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이익을 내는 우리은행도 살 사람이 없는데 누더기가 된 산업은행을 누가 사겠는가. 그렇다고 폐지 또는 파산시킬 건가? 앞서 언급한 리먼브러더스 사례를 상기하기 바란다. 오히려 작금의 저성장·불확실성 시대에 산업은행이 수행하는 시장안전판 기능은 필요악적 존재일 수도 있다. 산업은행 자체가 암덩어리는 아니다. 낙하산 CEO를 내려보내고 서별관회의에서 팔을 비트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폐지할 것은 산업은행이 아니라, 정권 실세의 낡은 생각이다. 대통령 잘 뽑아서 산업은행을 제대로 개혁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본다.

 

워크아웃 폐지론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경제관료의 관치금융은 불치병이니 싹을 잘라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건 개혁 주체세력의 무능을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첨언할 것이 있다. 선진국의 워크아웃은 채권자-채무자 간의 사적 자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으로 관치를 합법화하고 있으니, 그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완전한 오해다.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는 사적 자치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도입된 우리나라의 워크아웃 제도는 영국의 London Approach를 모델로 한 것인데, 영국의 중앙은행이 신뢰받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음을 감안하여, 당시 IMF는 청와대가 직접 중재자로 나설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을 부담스러워 한 청와대가 이를 거부했고, 밀실에서 관료가 개입하는 관치를 방조했다. 사적 자치 역시 책임질 주체를 필요로 하며, 유럽의 선진국들은 다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다. 무작정 워크아웃을 폐지하면, ‘법정관리로 끌어당기는 효과보다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어서 투명성과 책임성이 더 떨어지는 자율협약으로 밀어내는 부작용이 커질 수도 있다.

 

야당에 충고 한마디 하겠다. 만년 야당 할 생각이 아니라면, 집권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화해야 한다. 폐지론만 늘어놓는 것은 수권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폐지가 곧 개혁은 아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621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