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경영 책임, 어떻게 물어야 하나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6-02   
부실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특히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 등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의 지원 대책이 논의되면서, 부실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게 세상사의 이치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오히려 책임추궁이라는 명분하에 불투명한 관치 개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예컨대, 최근 채권단이 삼성중공업이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반려하고 삼성그룹 차원의 추가 지원 방안을 요구했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의 직접적 지원 방안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삼성중공업의 주주 구성을 보면, 삼성전자(17.62%) 등의 계열사가 총 24.0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의 총수일가는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 최대주주로서 삼성전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삼성전자가 삼성중공업의 경영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건 총수일가와 미래전략실의 전속사항이라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안다. 따라서 수주절벽 상황이 계속되어 언젠가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를 해야 한다면,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가 현 지분율을 유지하는 선에서 증자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의 부담을 지는 것은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 등의 외부 (소액)주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채권단과 그 뒤에 숨은 감독당국이 계열사의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면, 이는 배임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개선이 아니라 퇴보다. 지금 채권단이 해야 할 일은,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지고 삼성중공업 문제를 해결하라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하는 것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시장과 사회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그의 3세 총수 시대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라는 사실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주주는 출자지분만큼만 책임을 진다는 ‘유한책임의 원리’(limited liability)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주주에게 출자지분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총수가 평상시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조조정기에는 자구노력 내지 심지어 사재출연이라는 이름으로 근거 없는 관치적 개입을 하는 악순환이 생겨났다. 이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지배주주의 책임은 ‘주식이 많은 자’의 책임이 아니라 ‘경영권을 행사한 자’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부실이 현실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법률적 책임이다. 선관주의 의무(duty of care)와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위배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친 지배주주에게는 형사적·민사적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이게 제대로 안되면 그 뒤의 모든 게 꼬인다.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은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불법·부당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된 지 오래다. 조기에 제대로 처리했다면, 현대상선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독당국과 검찰의 책임을 생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법률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경영권 유지 여부가 관건이다. 경영권 유지 의지가 있으면, 감자·자산매각 등의 엄격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기존 지배주주 주도의 구조조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빨리 시장(M&A) 또는 법원(법정관리)으로 넘겨야 한다. 즉 경영권을 교체해야 한다. 무책임한 국책은행과 무능한 지배주주가 밀실협상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부실을 키우는 첩경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재벌 계열사도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꼬리 자르기’로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주주도 채권자도 노동자도 재벌총수를 감시할 유인을 갖게 될 것이고, 그래야 재벌총수의 법률적 책임을 제대로 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추궁은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요구한다. 관치는 잘못된 과거 관행을 연장할 뿐이고, 그건 책임추궁이 아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5월 31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