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삼성! 대구엔 현대차?

장하성 | 고려대 경영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26   

한마디로 이번 총선은 정책 실종 선거였다. 선거일을 불과 40여 일 앞두고서야 선거구 획정을 결정할 정도로 여·야당은 자신들의 기득권 싸움에만 몰두했다. 후보등록 마감일까지 옥새투쟁, 셀프공천, 비례대표 나누어먹기, 진박·비박, 친노·비노 타령하느라 정작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 꿇고 표 구걸하는 구태를 다시 연출했고,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애매모호한 허언도 했다. 그러나 정책 실천을 약속하며 무릎 꿇거나 정치생명을 거는 정당이나 후보는 없었다. 약속했던 공약은 물론이고, 선거 과정에서의 볼썽사나운 추태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갈 것임을 정치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억 상실은 과거 선거들에서 반복되었고, 여소야대를 만든 이번 총선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기억 상실을 하기에는 너무도 큰 공약을 내건 지역이 있다.


광주와 대구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시민에게 ‘삼성의 미래차 산업 유치’를 공약했고, 새누리당은 대구시민에게 ‘10대 기업 유치’를 공약했다. 더민주는 삼성 출신 후보를 내세워 김종인 대표가 약속을 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내세워 서청원 최고위원이 약속을 했다. 김종인과 서청원, 두 사람은 지역구 후보로서가 아니라 당 대표로서 공약했다. 따라서 이 공약은 당 차원의 약속이다. 10대 기업과 삼성 유치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대구와 광주 시민에게는 삶과 직결된 너무도 중대한 공약이다. 더민주는 삼성과 사전에 “협의했다”며 “유치해서 5년간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삼성은 즉각 “검토한 바 없다”고 부정했지만 제1 야당 대표의 약속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에게 건의해 청와대로부터 ‘여러모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확인까지 했고, 청와대나 대통령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으니 더욱 믿을 만하다. 더민주가 광주에 삼성이라는 구체적인 기업을 명시했으니, 새누리당이 이에 버금가는 10대 기업을 대구에 유치한다면 현대차·SK·LG·롯데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났다. 이제 양당은 공약을 이행하는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이 광주에, 그리고 현대차(?)가 대구에 유치된다면 두 도시의 시민에게는 엄청난 희망의 빛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독약을 바른 사탕’과 같은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기업의 지역 유치는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이지 전국적인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지역마다 기업 유치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이 특정 지역만을 위해 앞장선다면 이는 지역당이지 전국 정당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만 특혜를 주는 지역차별정책은 군사독재 시절에 이미 경험했고, 이는 다른 지역에 돌아갈 혜택을 빼앗아 주는 지역 간 약탈적 정책일 뿐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보다 더 노골적으로 지역감정과 차별을 조장하는 공약이다.


둘째, 정당은 물론 대통령조차 특정 민간기업을 특정 지역에 유치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민주와 새누리당이 지금의 한국 경제를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쥐고 흔들던 개발독재 시대로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특정 기업 유치 공약은 기업에 공개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수퍼갑질이다. 불법·탈법·탈세 등의 약점이 많은 재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재벌 총수들은 사면과 같은 식으로 ‘보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양당이 실제로 삼성과 10대 기업의 유치에 나선다면 이는 정치적 거래가 될 공산이 크다.


셋째, 전국 16개 시·도 중 1인당 지역내총생산에서 대구와 광주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지역이 대구·광주뿐이겠는가. 1인당 지역총소득으로 보자면 강원도와 전라북도가 꼴찌에서 1, 2등으로 대구와 광주보다 낮다. 고용률은 부산과 강원도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인천의 실업률도 대구만큼 높고, 청년실업률은 강원도가 대구보다 높다. 재정자립도는 전라남도와 강원도가 꼴찌에서 1, 2등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사회적 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에서 정당이 추구할 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이지 특정 지역만을 정략적으로 지원하는 약탈적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대구와 광주 시민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럽겠지만 삼성과 10대 기업 유치는 정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자치단체가 시민과 함께 해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공약을 한 정치인과 정당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약속을 할 정당한 권한도, 약속을 지킬 현실적인 방법도 없으면서도 ‘유치하도록 노력하겠다’도 아니고 “유치하겠다”고 단언한 정당과 정치인을 기억하고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 4월 26일자에 실린 칼럼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