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마지막 카드마저 날릴 건가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4-12   

‘정책선거는 물 건너갔나’ 하는 순간에 뜨거운 쟁점 하나가 터졌다.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이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의 날선 공방 속에 분위기가 달아오르더니, 급기야 새누리당이 차기 국회의 최우선 입법 과제로 공약하기에 이르렀다.


양적완화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라 불린다.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시행되었으나, 뭘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나중에 어떻게 수습할지도 모른다. ‘그냥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고육지책이다.


굳이 분석하자면, 양적완화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금리를 낮출 뿐만 아니라, 당분간 올리지 않겠다는 시그널도 시장에 주는 것이다. 둘째, 더 이상 금리 인하의 여지가 없더라도, 중앙은행이 민간부문의 자산을 대거 매입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셋째, 위기에 노출된 취약부문의 자산을 집중 매입함으로써 유동성을 선별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앞의 두 요소는 모든 나라의 양적완화에 공통된 것이지만, 세 번째는 특히 미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국채 매입 이외에, 주택담보대출·학자금대출·카드론 등 취약부문의 채권을 집중 매입한 것이 그나마 미국의 양적완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성과를 냈던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떤 의미의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가. 작년 하반기 이래 학계와 정책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없지 않았다.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내 멋대로 정리하자면, 첫째와 둘째 의미의 양적완화에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원화가 국제교환성을 갖지 못한 조건에서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면서 유동성을 무차별 공급하는 것은, 환율 급등·외자 유출 등 외부적 충격을 초래하고, 과다 부채의 내부적 위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양적완화를 한다면,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취약부문에 대한 선별적 유동성 공급이라는 셋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결국은 가계부채와 부실기업 문제의 연착륙을 위한 지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강봉균 위원장의 발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이미 논의가 있었고, 산업은행을 통로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돌아다녔다.


물론 구조조정 목적의 선별적 양적완화에도 반대 의견이 많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건 재정정책이 감당해야지 통화정책이 나설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합리적인 비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과서에 있는 이론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IMF 보고서도 구조개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확장적 거시정책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계부채와 부실기업 문제가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라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동시에 구조조정은 다수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요구하는 과정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구조조정의 일관된 집행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그 고통을 줄이려는 노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양적완화를 배제할 선험적 이유는 없다.


강봉균 위원장의 발언은 전문가들 사이의 찻잔 속 태풍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양적완화는 비전통적 정책수단이다. 즉 한국 경제가 위기(징후) 상태에 있고,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비상수단이다. 그런데 여당은 한사코 그 전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면서 무슨 비상수단인가? 자기모순이다. ‘경제 실정 심판하자’는 야당도 이 점을 짚지 못했고,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전통적 논리로만 대응했다. 답답하다.


또한 양적완화는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그 목적, 대상, 수단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더 축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여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졌다. 이러다가 진짜 필요한 순간에 바로 꺼내야 할 마지막 정책 카드를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예컨대 중국 경제의 경착륙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정치권이 선거 때 내뱉었던 말들을 잊고 즉각 양적완화에 합의할 수 있겠는가? 정치가 경제를 망친다는 한탄이 나오는 소치다. 여야 공히. 20대 국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그래서 더 걱정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4월 1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